해기사 6급항해사 한정면허 취득기

선택상태 재확인 안되고 응시표 출력으로 과필기 구분이 안됨

최근 동력수상레저기구조종면허(1급,요트) 갱신교육중 해기사 소형선박조종사면허(제한없음)와 해기사 한정면허(보트,요트,25톤) 따로 발급 받은 한정면허 취득 후 4년 경과하면 6급항해사 한정면허(보트,55톤) 취득 자격이 되어 해기사 6급항해사(상선) 시험을 봤습니다.

6급항해사 한정면허 취득를 위해 해기사 6급항해사(상선) 시험에 응시 4과목을 합격해야 하는데 모든 과목 40점 이상 두과목이상 총과목 평균60점으로 반드시 법규는 60점이 넘어야 한다는 것도 시험기관에서도 처음 알았는지 과목합격 문자 만 3번 받았습니다.

또, 어처구니 없이 해기사 시험 접수시 (상선전문, 운용, 항해) 과목 제외하고 법규 과필기 접수 하였으나 시스템 문제 인지 제가 잘못 하였는지 합격하고 연수원 2일 교육이수를 해야 한다기에 과필기 재응시하여 합격하여 최초 6급항해사 한정면허 발급 받았습니다.

접수를 잘못 하지 않았고 그렇지만 접수한 상태를 증명 할수 없어 재시험 보게 되었고 현재 시스템으로는 다른 시험 종목들도 계속 반복되고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어 시스템 개선을 요구 하였으나 개선 하기 전까지 각자가 사전에 대비 하는것이 좋을것 같습니다.

과필기 합격하고도 접수과정을 캡쳐하지 않아 재시험 보게 된 경험자로서 6급항해사 한정면허(총톤수 55톤 미만의 모터보트) 취득 하고자 하는 분들이 저와 같은 과정을 밟지 않도록 시스템 개선되기 전까지는 본문을 참고하여 수험자가 대비하길 바랍니다.

수험자가 해기사 접수시 면제과목을 제외한 과목선택 후 과필기를 체크 하였더라도 선택과목 과필기와 교육이수 과필기가 출력되는 응시표에 구분이 안되고 있어 ●면제요건 ‘과목합격(2년이내)’와 컴퓨터 모니터 오른쪽 하단 날짜와 시간도 보이게 캡쳐 바랍니다.

방법을 아시겠지만 캡쳐하고자 하는 화면 상태로 놓고 자판에서 ‘Print Scrn/SysRq’ 키를 눌러 그림판 또는 아래한글 등, 그밖의 프로그램 실행후 Ctrl+V(붙여넣기)하여 ●면제요건 접수 상태 화면을 반드시 저장하여 보관 하길 바랍니다.

※ 지난 2014년 [선박직원법 시행령] 일부개정 내용으로 ‘수상레저기구 한정 소형선박조종사’ 승무경력자에게 해기사 6급 한정면허로 연안수역을 항해하는 총톤수 25톤 이상 55톤 미만 비상업용 모터보트, 동력요트는 선장(6급항해사) 또는 기관장(6급기관사) 1인이 조종 할 수 있다.

해기사 6급(항해사,기관사) 한정면허 도입은 수상레저 스포츠 활성화를 위한 제도적 여건 조성 취지로서 연안수역 총톤수 55톤 미만 비상업용 동력요트의 선장(6급 항해사) 또는 기관장(6급 기관사)이 선장 및 기관장을 겸할 수 있도록 한것입니다.

진도동학농민군 후손을 찾습니다.

동학(東學)의 종교조직을 이용한 전봉준·김개남·손화중 등 개혁지도자를 중심으로 농민·도시민·소상인·몰락양반·이서 등 봉건사회 해체과정에서 몰락한 계층이 광범하게 참여한 반제·반봉건 근대화 투쟁운동으로 1894년 농민전쟁·동학난·동학 혁명·동학혁명운동·동학농민전쟁이라고도 한다.

농민전쟁의 진원지인 호남지방은 전통적으로 대지주에 의한 봉건적 수탈이 심하고, 강경·법성포·줄포·논산포 등의 포구·개항장은 대일 미곡수출이 활발한 지역이었다. 미곡무역에 편승한 지주층의 지주제 강화로 인해 소농·빈농층이 몰락했으며, 농촌사회 내부의 분화 및 계급대립이 전면에 나타났다.

이러한 상황에서 동학의 교세가 급속히 확대되었으며, 봉건사회를 변혁하려는 일군의 혁명적 지식인들과 결합하게 되었다. 호남지역에서는 유형원의 학문적 전통을 잇는 부안(扶安) 동림서원(東林書院)과 오랫동안 강진에 유배되었던 다산 정약용 등 실학자의 진보적 사상이 암암리에 몰락양반을 비롯한 지식인들에게 유포되고 있었다.

농민전쟁의 지도자인 전봉준도 그중의 한 인물이다. 이들은 기존의 군현단위의 농민봉기가 가진 지방적 분산성을 극복하고 체제개혁을 위한 대규모 농민전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각지의 농민들을 조직·동원할 수 있는 수단으로써 광범위하게 교세를 확장하던 동학조직을 주목했다.

동학(東學)은 몰락양반 최제우가 창시한 종교로, 후천개벽(後天開闢)을 통하여 만민평등의 지상천국을 건설하려 했다. 동학의 이념을 실현하는 방법으로는 ‘무위이화'(無爲而化)라는 관념적 차원에 머물렀으나 만민평등의 원리를 기반으로 한 반봉건 의식과 척왜양(斥倭洋)이라는 반침략의 민족 논리를 바탕으로 깔고 있었다.

동학교단은 1892년 11월 삼례집회와 1893년 3월 보은집회에서 교조신원운동이라는 종교적 운동을 벌였다. 이때 전봉준 등 남접세력은 동학조직을 이용하여 농민군을 결집시키고 민족적·계급적 요구를 실현하기 위해 혁명을 기도했다. 이들은 교조신원운동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정치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금구집회(1893. 3)를 소집, ‘척왜척양'(斥倭斥洋)과 ‘수령의 불법 침학 반대’를 외치면서 사회혁명의 기반을 다져나갔다.

특히, 동학이 처음 진도에 들어온 시기는 1892년 1월께 나주출신 나치현으로 진도동학 교세는 다음해인 1893년 충청도 보은집회를 계기로 크게 확산되었으며 1894년 5월께는 동학농민군지도자 박중진, 김수종, 나치현 등이 이끄는 농민군이 진도부를 점령, 집강소를 설치하고 과감한 개혁을 단행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렇듯 진도동학농민혁명군의 기세가 인근 목포, 장흥, 나주, 무안 등지까기 확산되어 영향을 끼치며, 연합농민군부대를 편성해 반봉건, 근대화, 반외세 및 자주화를 위한 혁명을 이뤄 나간 것으로 확인됐다.

진도동학농민혁명군이 1894년 11월 공주 우금타 전투와 12월 장흥 석대 전투에서 패배 후 진도로 집결, 진도농민군과 연합하여 남하한 조선정부군과 일본군을 상대로 최후 항쟁을 벌인 것으로 밝혀짐에 따라 최후 항쟁지이며 동학군의 처형장소인 진도군 진도읍 송현 마을에 역사공원 및 전시관 건립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진도동학농민혁명군 지도자 유골은 1906년 9월 일제 통감부 권업모범장 목포출장소 직원인 ‘사토 마사지로’가 진도에서 도굴해 일본으로 가져갔습니다. 유골에는 “한국 동학당 수괴 수급”이라 쓰여 있고, 별도 메모에 “촉루(해골) 명치 27년(1894) 한국 동학당 봉기가 있었다.

지도자 유골은 1995년 7월 일본 북해도대학 인류학 창고에서 발견된 것으로 아이누족 인권단체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일본 언론에서 보도하여 한국에도 알려지게 되어 이후 외교통상부와 (사)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가 유골 봉환을 요구했습니다.

진도군이 전주지방법원에‘유골현상변경금지 가처분 신청’을 2019년 5월 22일 제기했으나 5월 28일 기각하여 전주에 진도동학농민혁명군 유골이 안치되었습니다. 동학농민혁명을 동학란으로 농민군은 폭도로 지난 110여년 간 규정되어 왔습니다.

전라남도 진도는 그들이 가장 창궐했던 곳이었는데 그들을 평정하고 돌아올 무렵에 그 수창자 수백명을 죽여서 시체가 길을 가로막고 있을 정도였다. 수괴자는 효수하였는데 이 촉루는 그 가운데 하나로 그 섬을 시찰할 때 채집한 것이다.”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민족정기를 세우고 동학농민혁명에 참가한 자와 그들 후손의 명예 회복을 목적하여 제정한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2004년 9월부터 시행되어 왔음에도 본 법의 취지와는 달리 지난 15년 동안 관계 부처, 전주시측은 유골에 대한 권리만을 주장하며 오늘에 이른 것입니다.

1996년 5월 유골을 한국에 봉환하여 곡절 끝에 전주역사박물관 수장고에 보관해 오던 중 2015년 2월 화장 후 매장한다하여 진도군, 진도군의회, 진도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동학 학술단체, 시민단체 등이 화장을 반대하고 진도에 봉환해 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전주기념사업회와 전주시는 유골 반환을 거부하고 전주에 2015년 4월 16일 매장한다고 공표하여 이에 대해서도 진도군 등은 반대하며 후손을 찾는 유전자 감식을 위해 유골의 보전과 진도군에 봉환해 줄 것을 누차 요구했었습니다.

전주시측은 유골에 대해 ‘역사문화벨트조성사업’을 계획하여 4년이 지나서 전주동학농민혁명 녹두관에 2019년 6월 1일 안장하겠다고 하였던 것입니다. 이에 현재까지 역사기록과 연구조사에 나타난 동학농민혁명 지도자급의 진도 사람은 15명입니다.

진도 사람 15명 고인들의 넋을 기리고 진도인의 명예 회복을 위해서도 각 문중의 호적, 족보와 구전 등 자료를 수소문 하는 바, 진도동학농민혁명군 진도 봉환에 뜻을 같이하는 분들이 동참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진도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공동대표 박주언 o1o-6255-5815, 박영상 o1o-7170-3200, 사무국장 조성문 o1o-2662-1392, 홍보담당 박준영 o1o-2934-3119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지하철, 비행기처럼 여객선에도 관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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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설명절 고향을 찾은 귀성객들이 돌아가는데 있어서 여객선 기관고장으로 인하여 불편을 격었을 향우님들의 고향을 찾은 피로도가 어느때보다 높아졌으리라 여깁니다.

여러분이 오고싶어 하는 곳을 여지껏 지키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요구를 무시하는 관피아들이 선사의 이익때문에 선박관리가 부실하다며 떠넘기기 할 수 있겠으나 관피아들의 도서민을 바라보는 평소의 응대 문제가 표출된 결과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들은 평소에도 도서민들이 선령이 오래된 노후선박 교체나 신조선을 요구하면 유동인구가 없는 곳에 선사들이 투자를 하겠는가 하는 말을 하다 유동인구가 증가하여 선박증선이나 신조선 건조를 건의하면 조만간 준비를 하고 있다 예산이 없다는등 임기응변식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신조선 건조와 같은 돈들어가는 문제를 제쳐두고 돈안들어가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금번 명절 특송 여객선 시간표도 민간이 만든것보다 못한 시간표를 인터넷을 통해 공지하면서 불명확한 정보로 확인도 하지지 않고 수년간 쓰던 자료를 올려주며 이들선박을 관리하는 기관을 볼때 한심함을 느낍니다.

정부나 관피아들은 지하철, 비행기는 도시민이 자주 이용한다하여 다르게 취급하고 소수의 도서민이 이용한다는 여객선을 이용하는 낙후도서에 거주하는 국민(도서민)를 보살피는데는 인색합니다.

허나 여러분이 찾아오는 고향은 항상 제자리에 머물고 발전하지 못하는것을 매년 고향을 찾아오면서 많이 느끼지만 고향이 나이들어 정착하는 곳으로만 여기거나 명절때 찾아와 잠깐 불편함을 느끼고 한탄을 하기보다 관계기관에 개선을 요구를 하여주시면 어제과 같은 불편은 줄어들것이라 여깁니다.

이문제와 별도로 우리가 지켜야할 내가 살고 있는 바다, 세월호가 침몰된 지역섬이라서가 아니라 국가가 국민들에게 신뢰를 받고 미래로 나가기 위한 최소한의 보호의무이자 국민을 국가가 끝까지 책임져야 국가도 존재 한다고 생각하여 세월호 인양을 촉구하여 주십시오.

고향을 찾아와 그냥 돌아가지 말고 언제라도 나의 가족들에게 일어날수 있는 여객선사고에서 가족의 생명을 지켜줄수 있도록 국가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도록 우리바다에 침몰되어 있는 세월호의 조속한 인양을 당당히 요구하여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