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도해 유구한 역사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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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단일면으로도 가장 많은 178개(유35개,무143개)로 이루어져 흔히‘새떼’처럼 섬이 흩여진 곳이라 조도(鳥島)이며, 조선시대 행정구역이름은 여러섬이란 뜻의 제도면(諸島面)이었으나 1895년 비로소 지금의 행정구역 이름인 조도면(鳥島面)로 변경되었다.

조도면 섬에서는 석기시대를 말하는 화살촉, 돌도끼를 비롯한 고인돌과 고려때 지석묘들도 발견되었지만 왜적과 해적들로 인하여 공도(空島)시기가 있어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의 선조들이 섬에 들어온 시기는 임진왜란(1598년)이후 1600년초로 족보를 통해 확인된다.

조도사람들이 서양문물을 접했던 사건으로는 1714년 조도사람들 9명이 표류하다 17일만에 일본 오끼나와에 표착했다가 중국을 통해 귀국한 9명에 대한 심문기록이 숙종실록, 1758년 대만 표류, 1899년 일본 표류등 표착하여 조도사람들의 외국 문물을 접하고 활발한 어업 활동을 했음을 가늠 할 수 있을 정도다.

한편, 서양에서 조도문물을 접했던 사건으로는 1816년으로 200년전 영함(英艦)을 호위하던 호위함(리라호)의 바실홀(Basil Hal)함장의 왕실보고서에서 조선인들과 영국인들이 서로를 관찰한 것처럼 역사서가 후대에 전달되고 있는데 조도사람들의 생활상이 서양에는 조선의 모습으로 전달되고 있음을 알수 있다.

또한, 섬지역이지만 조도지역이 서양문물에 대한 거부감이 덜한 이유로는 1866년 천주교의 정착 동구리와 창리에 선교당으로 시작되었고, 1898년 목포산정동 초대 프랑스신부(도예)(1898~1909)가 판공성사 차 제주에 갔다 오다 풍랑으로 동구리 방문 이후 공소 개설함으로써 카톨릭 역사가 150년에 이른다.

최근 일어난 세월호 침몰사고 처럼 대형해난 사고가 끊이지 않는 지역으로 1968년 병풍도에 부디쳐 우리나라에서 기름 해양유출 첫 피해지역으로 국제항로(매물수도)와 국내항로(맹골수도)가 있어 수많은 선박의 통항로로 우리나라에서 조류가 빠른 해역이다.

지난 해난사고는 1947년 전복사고 7명사망, 1957년 채취선 14명 사망 나루선 15명 사망 전복사고, 1966년 6명 전복사고, 1973년 한성호 61명 사망 전복사고, 1978년 어선 3명 실종, 1980년 어선 3명 조난, 1988년 어선 1명 익사, 1990년 어선 4명 실종, 1996년 어선 3명 실종 등 해난사고 유난이 많이 일어난 지역이라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