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11주기, 진실 심연에 묻혀

11년전 세월호 참사 당시‘루머’를 대표하는 것으로‘잠수함 충돌설’이죠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인터넷 등에서는 수심이 낮아 잠수함이 다닐수 없는 우리지역 해역을 두고 전문가들은 수심으로 보아 잠수함이 지나다닐 수 있는 조건이 아니라고 지적했고 잠수함 충돌설은 사람들에게 잊혀진 가설로 치부 되었습니다.

4장의 사진을 설명하자면 제가 직접 2014년 10월 7일 해양 관련 목포 삼학도 잠수함 공개 행사를 위해서 팽목항 앞바다 목포로 가는 잠수함 목격 사진, 2014년 10월 11일 오후 4:40 왕건함 옆에 함정 공개 행사에서 잠수함 사진, 2014년 10월 13일경 공개 행사 끝나고 맹골수도 보다 깊지 않은 팽목항 앞 해상 장죽수도에서 목포에서 진해로 복귀하는 잠수함을 여객선 위에서 직접 봤으니 그 당시 군당국의 반박 기자회견에서 “수심이 깊지 않은 곳은 반잠항 운항도 하지 못한다”는 것은 거짓말 임을 밝힙니다.

참고로 장죽수도는 진도 울돌목 다음으로 우리나라에서 유속이 빠르고 수중에는 골짜기 형태로 뾰족한 지형이고 무엇보다도 여객선을 비롯한 각종 선박운항이 어느곳보다 많은곳입니다.

허나 병풍도 해역(맹골수도)은 장죽수도보다 평균깊은 50미터이고 잠수함 군사훈련구역으로 병풍도 서남방으로 바로 붙어 있는곳에서 2014년 4월15일까지 한미연합훈련 중이였고 16일 세월호 참사가 잠수함 충돌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은 어불성설로 보여집니다.

세월호 침몰과 관련이 없다면 그때 군사훈련이 있었지만 잠수함 훈련이 없었다는 것을 군에서 증거를 제시하고 밝힌다면 믿을 수 있겠으나 잠수함 훈련구역에서 한미 군사훈련도 전날까지 했는데 군 잠수함과의 충돌 의혹을 갖을 수 있다는 것이 누구나 상식적인 생각인데 의도적으로 배제 한다는것이 문제가 아닐수 없습니다.

그런 의혹에서 벗어나고자 진실을 밝힐 참군인이 있을수 있다고 일말의 기대도 하지도 않지만 4.16세월호 참사, 학살은 416 피해 가족만의 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피해자 이자 목격자인 우리 사회가 어떻게 돈보다 생명, 피해자 권리를 존중하는 사회로 변화하기 위한 행동으로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구상에서 삶을 영위하는 과정에서 사람과 물자의 이동과 수송을 위해 원시시대 통나무배를 지금은 대형선과 크루즈까지 발전 했지만 지구상 가장 넓고 미지의 세계 오대양에서 해양사고는 계속되고 국내에서도 해양사고는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연근해에서 총1,300여척의 선박이 침몰되었고 어선사고가 대부분이지만 여객선과 같은 대형인명사고로 많은 국민들이 더이상 죽지 않기 위해서라도 사고원인과 조사가 철저히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해양사고가 계속되는 것은 참사 원인을 제대로 밝히지 않아서 계속 된다고 봅니다.

1951년 부산 가덕도 제5편리호(94명추정),1953년 부산 다대포 창경호(300명추정),1963년 목포 허사도 연호(140명추정),1967년 해군 충남항과 충돌한 한일호(93명),1970년 여수 상백도 남영호(326명),1973년 팽목항 인근 한성호(초등생 포함 72명)는 문잠그고 선장 탈출,1993년 부안군 위도 서해훼리호(292명), 2014년 병풍도 세월호(고등학생 포함 304명)도 탈출방송 없이 선장과 선원만 탈출하였습니다.

조도해역에서 수장된 사람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한것이라고 조금이라도 힘을 보탤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되는 곳이면 다방면으로 이곳저곳 전국을 다니면서 기록하고 여러모습들을 나름 목격하고 있지만 발언은 하지 않고 지켜만 봐왔습니다.

진상규명 하겠다는 단체 구성원들의 자신의 이익을 쫏는 언행을 직접 목격 했기에 그들의 본모습을 모르는 가족들이 안타까운 마음 뿐이고 가족들의 진상 규명을 위한 투쟁에 비해 진상 규명은 산으로 가는 것을 보면서 518 진상 규명 처럼 세월호도 40년 그 이상이 될 것 같아 허탈감으로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누구나 어떤 참사 피해자가 되면 먼저 정부나 관련된 곳과 맞서 투쟁 해본 사람들이 다가오면 그들에게 의지 할 수 밖에 없다고 하지만 세월호 참사도 마찬가지 어느 참사와 별반 다르지 않게 흘러가는 모습들을 보면서 진상 규명도 점점 멀어지겠구나 느꼈습니다.

지난 모습들은 사회적 참사에서 흔히 보는 피해자들간 갈라치고 흩어지고 모이고 이런 시행착오로 침착되어 진상규명은 세월호 명칭 처럼 세월이 흘러 요원하겠다 싶었습니다.

문재인 정부 국정과제 1호로 가습기 피해자와 스텔라데이지호를 대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내팽겨쳐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가족들에게도 결과가 뻔히 보이는데 보지 못하고 있으니 희망고문 당하고 있음을 하루 빨리 알았으면 하는 마음 뿐 이였습니다.

가족들은 알고도 그것만이 의지 할 수 밖에 없는 썩은 동앗줄 인줄 알면서도 매달 릴 수 밖에 없기에 그럴수도 있겠지만 정치인들을 보고 사람이 먼저다 외친 사람마저도 초심을 잃었음을 우리는 직시하여야 했습니다.

세월호 참사도 특정 정치 세력의 정치 도구가 될 것을 우려했는데 우려대로 그대로 되어버렸구나 더 절망적인건, 정치 도구화 되어버린 꼭두각시가 되어버린것을 못느끼고 있다는데 있겠다.

“가해자가 악하다는 말이 피해자가 선하다는 말 아니다.”,”대의가 항상 정의인 것은 아니다.” 매번 깨달고 알면서도 옆에서 지켜보고 볼 수 밖에 없다. 내가 당사자가 아니라서 말이다.

선조위 실물레이션에서 세월호 모형만 놓고 항주시험을 하였겠지만 여러가지 변수에서 외력(선박, 잠수함등 기타 미확인 물체등)을 적용해 보지는 않았겠지요.

참고로 장죽수도는 진도 울돌목 다음으로 우리나라에서 유속이 빠르고 수중에는 골짜기 형태로 뾰족한 지형이고 무엇보다도 여객선을 비롯한 각종 선박운항이 어느곳보다 많은곳입니다.

음모론으로 몰수 있겠으나 참사 원인을 가정해보면 2014년 4월 15일 한미독수리 훈련구역이 병풍도 아래쪽에 있는데 그곳에서 활동중이던 장보고급 1200톤 잠수함 길이56미터 폭6.2미터 22노트 속력으로 잠항중 있었다고 가정 했을때 맹골수도 충돌지점 수심50미터 잠항중이던 잠수함이 수심30미터 해저수심이 나오니 상승중 물밖으로 튀어 올라와 충돌을 예상 해봅니다.

2001년 부산 앞바다에서 미군잠수함이 상승중 어선을 침몰시켰던 사례가 있습니다.

혹시나 장죽수도나 맹골수도 해저수심 보시고자 하면 국립해양조사원 ‘해도/주제도’ – ‘개방해’ 메뉴에서 보면 그당시 잠수함 지나간곳은 뾰족한 곳으로 수심 20미터도 있습니다.

세월호 진실의 핵은 세월호가 자력으로 급변침을 했는가? 세월호가 충격으로 급변침을 당했을까?에 대하여 이제는 전문가들이 밝혀야 할때라 생각합니다.

최근 세월호 참사를 다룬 영화도 나왔지만 보지 않았으나 짐작을 해보면서 그동안 수많은 원인분석을 한 전문가들도 결론을 미리 내려놓고 찾는데 급급하였지 세월호 같은 사회적 참사를 다룬 영화에서 지적하고자 하는 것을 바로보지 않고 알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을 지적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참사 당시 그날은 시야도 좋고 파고도 높지 않았으나 세월호는 그냥 넘어졌어요. 그날의 선박 조종간을 잡은 이들은 말이 없고 심연에 정확한 사실을 말하지 않는것인지 누군가에 의해 말하지 못하는 것인지 알수 없지만 참사의 진실을 꼭 밝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참사에서 수많은 억울한 죽음을 밝혀야 하며, 반면교사하여 또 다른 대형 해난 해상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 기록하고 기억하도록 사고 수습 현장인 팽목항에 기억공간 조성과 세월호 선체 보존(진도시민단체 여론조사 진도주민, 찬성60프로)이 꼭 필요 합니다.

조도에 천주교 신축 예배당 건립한다.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은 다도해 지역으로 독자적 해양문화를 띄고 있는 곳으로 하조도 읍구리와 성남도에서 고대 조개무지가 1973년 무문토기와 제주도 돌로 보이는 석기도 성남도에서 발견되어 이미 석기시대부터 입도 하였음 알 수 있다.

자원발굴조사에서 하조도 읍구리에서 3기의 지석묘와 선돌이 발견되었으며, 고려고분도 확인되었고 가사도, 관사도, 관매도, 거차도 등지에서 돌칼, 돌도끼, 돌화살촉을 수습 한 바 있으며 현재 유토마을회관 앞마당에 선돌이 옮겨져 있다.

육지와 떨어진 도서지역에서 해적과 왜구로 인해서 공도 시기가 있었고 임진왜란(1598년)이후 1600년부터 해남, 진도, 영암, 영광 등지에서 선조들이 입도하기 시작했고 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1708년(숙종 34) 상조도와 하조도에 관방을 설치하여 그 성터가 상조도 맹성리와 하조도 읍구(고을기미, 꼴기미)리에 있었다.

제도면(조도면 전신)의 신검산, 돈대산, 대붕산 등에는 봉화터(돈대,墩臺, 조선시대 높은곳에서 동태를 살피는 초소나 군대)가 있었고 정조 이후 하조도에 세곡창고를 두어 도청리(都廳里, 세곡창고를 관리하는 도감이 있다하여 옛지명)라 하여 창리라는 지명이 유래 되었다.

신사태(신사터) 지명은 일제강점기 면소재지 창리마을 신검산(神劍山, 뾰족한 신의 검 형상, 새의 날개 형상) 자락의 갈매기머리(鷗頭山, 구두산, 노적봉, 새가 알을 품은 명당)로 일제가 지기(地氣)를 끊어 지역에서 인물들이 나서지 못하도록 봉우리를 깍아 내었다.

지맥정기를 끊기 위해 동서방향으로 칼로 베고 신작로를 놓고 1938년 신사(神社, 일본인 신성 의례 공간)를 지어 주민들을 토리로 들게하여 일본천왕에게 머리를 조아리게 참배를 강요 하였던 곳으로 옛부터 지역 유지들의 집이 산 주변에 자리하고 있었다.

우리지역에서 선조들이 서양인들과 카톨릭을 처음 접한 것은 1816년으로 이후 카톨릭이 싹트기 시작한 것은 1866년(고종 3년)에 조선의 천주교 박해 중 가장 규모 큰 병인박해로 인한 병인양요가 일어난 시기부터 다.

무안 몽탄 박원기 내외가 상조도 동구리 668번지(동구공소터)로 입도하여 살면서 전교를 시작하였고 신자 장봉헌이 창유리 697번지에 초가 3칸을 건축하여 선교당으로 육지와 단절 된 곳이라서 천주교 병인박해에서 벗어 날 수 있었다.

이후 목포 산정동 초대 프랑스신부(도예)(1898~1909)가 1898년 판공성사(判功聖事)차 제주 갔다 오다 풍랑으로 현재 성모마리아 상이 세워진 상조도 동구공소에 머물면서 1900년에 하조도 창리마을에 공소를 개설하고 카톨릭 전파가 본격화 되었다.

100년이 흐른 뒤 2002년 성유진길(아우구스티노)성당은 의신,군내,고군,조도에 있는 9개공소를 통합하여 진도진길성당으로 승격되어 이준한(토마)신부가 부임하여 조도에서 카톨릭은 현재까지 뿌리 깊게 이어지고 있다.

조도예배당이 신축 되는 곳은 신검산(神劍山) 자락의 구두산(鷗頭山) 창유리530번지로 임세춘 도감(都監, 대마도, 소마도 등 말목장을 관리 훈련하는 비상설기구, 세곡창고와 말 관리 겸하는 직책)의 불망비(不忘碑, 어떠한 인물의 사실을 후세 사람들이 잊지 않도록 기록하여 세운 비석)가 1854년 세워졌다.

이후 임도감 불망비는 사적으로 창유리 530번지에서 1960년 옛 면사무소 부지 정원으로 옮겨졌다가 어류포 선창에 있던 조도환취항기념비, 유공자비등 9기의 비석과 함께 1990년 어류포 잔등 옛발전소 부지에 옮겨져 보존되고 있다.

천주교 광주대교구 진도진길성당 조도예배당 건립기금 계좌 농협65107951041581 (재)광주천주교회 를 통해 수년에 걸쳐 건립 기금이 조성되어 조도면 창유리 530종(10,900㎡)이 개인소유로 531종(17,387㎡)이 법인소유로, 532종(4,890㎡), 533종(1,134㎡), 560종(1,064㎡)등 9필지가 개인소유로 2024년 1월 이전이 완료되어 오는 7월 중순 착공에 들어 간다.

한편, 조도면지(鳥島面誌)(2010, 512)편찬위원회에서 조도역사나 문화에 관심 있는 분들의 의견을 체득하여 기록하였고 진도군지(珍島郡誌)(1976, 853)에 상권 106쪽에 신검산(神劍山) 한자명으로 기록되어 있고, 836쪽에 신검산과 신금산 한글로 병기되어 있다.

일제의 문화 말살 정책으로 옛 지명이 변경 된 우리지역에서 사례가 신사태(신사터)로 현재 지명으로 굳어져 후손들에게 전달되고 있는 것으로 일제강점기 잔재가 오랜 세월이 지나도 각인되어 청산 되지 못하고 있음을 기록 해 본다.

대표적 사례로 대전에 있던 호남일보사가 1933년 발행한 ‘충청남도 발전사’에 의하면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1905년 12월 특별열차로 부산으로 가던 중 정차한 역에서 ‘여기가 어디냐?’는 질문에 ‘태전역’이라는 보고를 받고 이맛살을 찌푸리며 ‘이름을 바꾸라고 해라, 이제부터는 태전이 아니라 대전이다’라 하여 대전역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역사적 사실이 침략자에 의해서 변형되어 기록 될 수 있기에 과장되어 지역의 전설 만들기는 경계하면서 기록물로 전해져 오는 다양한 이야기를 편견을 버리고 중립적 사고로 기록하고자 노력하며 일제 강점으로 왜곡 된 것들을 후손들이 복원하고 보존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1880~1936) 선생께서는 “역사란 무엇인가? 인류 사회의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 시간으로 발전하고 공간으로 확대되는 심적(心的)활동 상태의 기록이니, 세계사라 하면 세계 인류가 그렇게 되어온 상태의 기록이요, 조선사라 하면 조선 민족이 이렇게 되어온 상태의 기록이다.”라면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라고 역설 하였다.

일제 강점으로 자유를 빼앗겼던 시대 꼭 기억해야 할 친일파
https://m.blog.naver.com/goldbanana8/220634709424

팽목 기억예술마당 & 순례 & 캠프

팽목 기억캠프(순례, 예술마당)

팽목의 기억은 2014년 4월 16일로부터 오늘을 지나 내일로 흘러 우리의 기억속에 머문다.
세월호 참사 현장인 팽목은 여전히 시선밖에 머물러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뭍으로 나와 엄마•아빠를 만나고 집으로 갔던 장소이며 국민들이 온마음으로 아파하며 위로와 격려를 했던 장소입니다.
역사의 현장인 팽목은 예정된 항만 개발공사로 그 장소가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는 팽목항 이곳에 우리 아이들의 흔적이, 진도군민의 헌신과희생, 온국민의 마음들이 하나되어 위로와 격려를 했던 봉사현장을 기억하고 미래세대에게 알려줄 역사의 현장인 팽목을 지켜나가야 합니다.

•일시: 2022.10.29(토)~10.30(일)1박2일
•장소: 세월호팽목기억관앞
•모집: 40명 미만 (텐트12동) 선착순 모집
•준비: 침낭,세면도구,컵 지참, 텐트,식사(2식)무료제공
•문의: O1O-8957-0350(정기열),서울경기 O1O-8359-0874(김현석)

•프로그램 (1~5시까지 팀별 프로그램 운영)
1.팽목기억순례팀 (오후1시 ~ 3시30분)
2.팽목항 부두 프랑설치팀(오후2시~3시30분)
3.팽목강당 외벽 그림그리기팀(오후2시~4시)
4.기억캠프텐트 설치팀(오후3시30분~5시)
5.기억예술마당(메인프로그램 저녁7시~9시)

50번째 팽목바람길

11월 팽목바람길 & 기억예술마당

11월은 팽목바람길과 기억예술마당이 함께 합니다.
기억관에서 기다림의 등대, 기억의 벽을 지나 서망항을 돌아 옐로우로드 함께 걸어요.

•일정: 2022년 11월 5일(토) 오후1:00
•장소: 팽목(진도)항 팽목기억관에서 출발합니다.오후 1:00 팽목바람길 걷기(옐로우로드) 오후 3:30 기억예술마당(팽목기억관마당)
•준비: 편한옷, 운동화, 모자
•참가비: 1만원(농협:301-0292-9523-01:팽목바람길)
•문의: O1O-9704-0415 (입금후 성함과 함께 문자주세요!)

몸은 멀어도 마음은 함께 팽목바람길 랜선으로 함께 걸어요.

2022년 11월 5일(토) 팽목바람길 오후 2:00 기억예술마당 오후 4:00 유튜브, 페이스북<팽목바람길>채널로 오세요.

팽목기억예술마당 일흔두번째

팽목기억예술마당 일흔두번째

진도군 임회면 팽목항에서 매달 마지막주 토요일 열고 있는 기억예술마당 일흔두번째에 세월호 참사 8년동안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책임자 처벌을 바라며 팽목기억공간 조성을 위해 진도에 거주중인 세월호 참사 가족분들과 동행 하고자 합니다.

또한, 진도에서 현재 활동중인 사)한국생활인음악협회 진도지부 이서형, 이장도, 박정수, 세월호 참사 당시 자원봉사에 헌신하셨던 진도군적십자봉사회, 진도군자율방범연합회, 빵을 맹그는 아짐, 팽목마을주민들과 함께 하고자 합니다.

세월호 참사를 목격하면서 잊지 않겠다고 자신과 했던 약속을 잊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이제 할 만큼 했다고, 그만 팽목항을 비워줘야 하지 않느냐고, 그 동안 진도군민들이 애로를 잘 견뎌주었으니 세월호 관련 시설물은 철거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이죠.

이에 우리는 팽목항 전체를 “기억의 공간”으로 만들자는 뜻은 아닙니다. 사고지점과 가장 가까운 뭍, 희생자들이 바다에서 나와 가장 먼저 도착한 땅, 가족들이 목놓아 소리치던 바다를 향한 곳, 전국의 수많은 시민들이 뭐라도 도우러 달려온 땅끝. 바로 그 땅 팽목항에 있는 세월호기억관 자리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볕좋은 날인 오늘도 내일도 팽목항에 사람들 발길이 이어집니다. 세월호 참사를 알지 못한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온 가족들이 대부분입니다. 어린 자녀를 이끌고온 그들이 남긴 방명록에는 늦게 와서 미안하다는 마음이 가득합니다. 희생자들을 전혀 알지 못한 초등학생 아이는 언니오빠들한테 인사를 전합니다.

참사의 진실을 밝히고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살아남은 이들과 현장에서 헌신했던 수많은 이들을 치유하고 공동체를 회복 해 가야 할 구심점으로 현장을 기록하고 기억 할 수 있도록 반드시 기억공간이 건립되어야 할 것입니다.

전라남도와 다르게 진도군은 시민단체가 요구했던‘4.16공원 조성’과‘희생자 기림비’,‘표지석 설치’등에는 동의했지만, 팽목항에‘4.16기록관’을 건립하는 문제에 대해서는“팽목항에 별도 추모 시설이 필요한지 의문이다”며 난색을 보여왔다.

허나, 진도군과 다르게 지난 2019년 4월 16일 김영록 전라남도지사는 진도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5주기 추모식에서 ’팽목기록관조성’을 공표하며 약속 했었다.

하지만, 진도군은 “컨테이너 5동을 빨리 철거하라는 주민들의 항의가 많이 들어온다”며 “행정대집행을 하든지 철거하지 않을 경우 고발 조치를 하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하지만 매일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자 방문하는 추모 관광객들의 입도를 반기는 이중적 태도를 보이는 것에 대해서 돼새겨 보길바래 봅니다.

전라남도 차원에서 전쟁이나 학살처럼 비극적인 역사 현장이나 재난재해가 있었던 곳에서 교훈을 얻는 ‘다크투어리즘(Dark Tourism·역사교훈여행)’을 활성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는것이 그나마 다행입니다.

간혹 말하는 누군가의 아픔을 ‘관광상품’으로 한다는 우려가 있지만 세월호 참사 수습 현장인 팽목에 방문객들이 끊이지 않고 찾아오고 있어서 지역민들과 함께 소통하며 팽목기억공간을 추진하는 것입니다.

세월호 참사 수습 현장도 미국 9·11 테러 현장 ‘그라운드 제로’, 독일 베를린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공원‘ 등 처럼 재난·재해 현장을 둘러보며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곳으로 세월호 참사 피해자, 생존자, 선생님, 목사님, 잠수사, 소방대원, 경찰,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의 희생을 잊지 않기 위해서라도 기억·약속·책임을 다해 봅시다.

현재, 세월호 참사 8주기 기억식 유튜브 생방송( http://2014416.com )주소를 팽목을 지키는 사람들이 여는 2022년 8월 27일 4시16분부터 팽목기억예술마당 일흔두번째 생방송(당일 변경) 주소로 포워딩하여 함께 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기억하고자 현장에 간다.

팽목기억순례로 이어 갑니다.

매월 마지막주 토요일 팽목항‘기억예술마당’은 지난 2015년 6월 27일 첫 공연을 시작으로 7년간 미수습자‘기다림의 공연’23회와 세월호 인양후 세월호 참사를 잊지않기 위한‘기억예술마당’을 46회째 전국예술인들이 모여 이어가고자 하였으나 코로나19 방역지침에 따라서 또다시 쉬어가고 목포신항 세월호 선체 참관과 진도팽목항 기억순례만 하기로 하였습니다.

수많은 대형 참사에서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참사의 진실을 밝히고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치유하고 공동체를 회복 해 가야 할 구심점으로 참사의 현장을 기록 할 수 있도록 반드시 기억공간이 건립되어야 할 것입니다.

 팽목기억공간 조성을 위한 팽목기억연대는”팽목4·16기록관 조성을 진도군이 가로막고 있다”며 “진도군이 오히려 세월호 참사의 기억을 지우려 하고 있다”고 하며, “팽목항에는 국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는 만큼 기억돼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전라남도와 다르게 진도군은 시민단체가 요구했던 ‘4.16공원 조성’과 ‘희생자 기림비’, ‘표지석 설치’등에는 동의했지만, 팽목항에 ‘4.16기록관’을 건립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팽목항에 별도 추모 시설이 필요한지 의문이다”며 난색을 보여왔다.

진도군과 다르게 지난 2019년 4월 16일 “김영록 전남도지사는 진도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5주기 추모식에서’팽목기록관조성’을 약속 했었다”며 “이후 전남도는 진도군에’기록관 건립을 위한 항만계획 변경 협조공문’을 보냈지만 ‘협조 할 수 없다’고” 하고 있으니 시민연대의 힘이 필요 합니다.

39년전 팽목항 인근에서 한성호 침몰 참사와 7년전 세월호 참사 수습 현장인 팽목항에 416기억공간 조성과 세월호(진도군민 여론조사, 찬성60프로) 팽목 거치를 바랬지만 선체는 목포 고하도로 결정 되었으나 416기억공간등 바라는 진도군민연대를 비롯한 전국에서 잊지않고 팽목을 찾아오고 있는 수많은 방문자들이 있음을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팽목항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구심점이 되는곳으로 ‘참사 수습 현장인 팽목에 자그마한 기억공간 하나라도 만들자’는 게 우리의 주장이지만 의견은 무시되고 결과적으로 진도군으로 부터 5월경 불법시설물이라며 철거 내용증명을 받게 되었습니다.

최근 광화문광장의 세월호 기억공간인”기억과 빛”은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가 달라져야 한다는 촛불항쟁의 상징적인 곳인데 서울시의 일방적 철거시도는 세월호 참사 당시 팽목항의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함께했던 시절을 생각하고 촛불집회의 뜻을 우리는 간과하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서울시의회에서 전향적으로 광화문광장의 “기억과 빛”을 서울시의회 건물로 옮겨 1층 로비에 임시 전시관을 만들었다고 하지만 이곳 또한 언제까지 남아 있을지 모르겠지만 수많은 대형참사의 조형물들이 사고 현장이 아닌곳에 있도록하는 것은 잊혀지므로서 또다른 참사를 만들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팽목항도 마찬가지 세월호 참사의 실상과 현재를 돌아보면 수많은 대형 참사에서 우리는 반면교사하지 못하고 반복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함에서 오는 허탈감이라고 할까 서울시와 마찬가지 진도군에서도 팽목항 기억공간의 철거를 통보하고 있지만 우리가 계속 지켜야하는 의무가 아닐까 합니다.

우리는 여전히 세월호 참사와 같은 대형 참사의 한 가운데 서 있으며, 세월호 참사 이후 7년이 지나도 광화문과 팽목항에서 그들을 기억하고자 하는 것은 현재의 우리를 돌아보게하는 성찰의 이정표로 일상적인 참사를 마주하고도 바뀌지 않는 대한민국의 민낮을 보게 됩니다.

서울 광화문과 마찬가지로 팽목항 기억공간에 관한 것도 팽목기억연대에서 수차례 만나고자 하였으나 진도군수는 한차례도 만나주질 않고 진도군민 여론이라며 빙자해 팽목 개발사업을 방해한다고 여론을 호도해 왔습니다.

세월호 참사 7년 팽목항 개발공사가 막바지에 이르러 진도군은 기억공간에 위치한 건축물에 대해 민원이 들어 왔다면서 현재 자진철거를 요구하고 행정대집행을 하겠다고 협박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 여론을 돌리기 위해서 국도18호선 4차로 예타면제와 국민해양안전관을 짓겠다고 했으나 국도18호선은 2차로 공사로 변경되고 국민해양안전관은 세월호 참사 이전 계획했던 청소년수련시설을 ‘국립과 해양안전’ 명칭만 넣었기에 현재 진도군은 국립해양안전관 운영비를 요구하며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빌미로 팽목416기록관은 강하게 거부하고 있습니다.

여러 참사에서 반면교사하지 못하고 대물림하는 우를 다시 반복 할 수 있음을 인식하고 잊지 말아야 할 사회적 참사 현장에 대한 기억 여행, 다크투어의 한 지점 또는 치유 될수 있는 것은 참사 현장을 기록하고 기억하기 위한 기록공간을 조성하는 것 부터 시작된다고 봅니다.

팽목항 기억공간 조성 참여단 모집 http://416.co.kr 팽목항 416공원 조성 요구 서명 http://416park.co.kr 팽목항 기다림과 기억예술마당 (참사 7주기 기억식) http://2014416.co.kr 팽목항 4.16공원 조성 촉구 국민 서명 http://sewol.kr 세월호 참사 사안 때마다 http://2014416.comhttp://20140416.com 그 밖의 많은 416관련 도메인 서비스를 계속하고 있는 이유는 세월호 참사의 현장에 살고 있다는 주민으로 부채감 일 수 있겠지만 반면교사하여 세월호 참사와 같은 아픔이 더이상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며 안전한 대한민국에서 살고 싶기 때문입니다.

코로나19 전라남도 사회적거리두기 연장

팽목항 기억순례로 이어갑니다.

팽목기억순례로 이어갑니다.

매월 마지막주 토요일 팽목항‘기억예술마당’은 지난 2015년 6월 27일 첫 공연을 시작으로 7년간 미수습자‘기다림의 공연’23회와 세월호 인양후 세월호 참사를 잊지않기 위한‘기억예술마당’을 46회째 전국예술인들이 모여 이어가고자 하였으나 코로나19 방역지침에 따라서 기억예술마당 예순아홉번째는 쉬어가고 기억순례만 하기로 하였습니다.

수많은 대형 참사에서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참사의 진실을 밝히고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치유하고 공동체를 회복 해 가야 할 구심점으로 참사의 현장을 기록 할 수 있도록 반드시 기억공간이 건립되어야 할 것입니다.

팽목기억공간 조성을 위한 팽목기억연대는”팽목4·16기록관 조성을 진도군이 가로막고 있다”며 “진도군이 오히려 세월호 참사의 기억을 지우려 하고 있다”고 하며, “팽목항에는 국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는 만큼 기억돼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전라남도와 다르게 진도군은 시민단체가 요구했던 ‘4.16공원 조성’과 ‘희생자 기림비’, ‘표지석 설치’등에는 동의했지만, 팽목항에 ‘4.16기록관’을 건립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팽목항에 별도 추모 시설이 필요한지 의문이다”며 난색을 보여왔다.

진도군과 다르게 지난 2019년 4월 16일 “김영록 전남도지사는 진도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5주기 추모식에서’팽목기록관조성’을 약속 했었다”며 “이후 전남도는 진도군에’기록관 건립을 위한 항만계획 변경 협조공문’을 보냈지만 ‘협조 할 수 없다’고” 하고 있으니 시민연대의 힘이 필요 합니다.

39년전 팽목항 인근에서 한성호 침몰 참사와 7년전 세월호 참사 수습 현장인 팽목항에 416기억공간 조성과 세월호(진도군민 여론조사, 찬성60프로) 팽목 거치를 바랬지만 선체는 목포 고하도로 결정 되었으나 416기억공간등 바라는 진도군민연대를 비롯한 전국에서 잊지않고 팽목을 찾아오고 있는 수많은 방문자들이 있음을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팽목항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구심점이 되는곳으로 ‘참사 수습 현장인 팽목에 자그마한 기억공간 하나라도 만들자’는 게 우리의 주장이지만 의견은 무시되고 결과적으로 진도군으로 부터 5월경 불법시설물이라며 철거 내용증명을 받게 되었습니다.

팽목기억연대가 제시한 팽목기억공간조성(안)

최근 광화문광장의 세월호 기억공간인”기억과 빛”은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가 달라져야 한다는 촛불항쟁의 상징적인 곳인데 서울시의 일방적 철거시도는 세월호 참사 당시 팽목항의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함께했던 시절을 생각하고 촛불집회의 뜻을 우리는 간과하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팽목항도 마찬가지 세월호 참사의 실상과 현재를 돌아보면 수많은 대형 참사에서 우리는 반면교사하지 못하고 반복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함에서 오는 허탈감이라고 할까 서울시와 마찬가지 진도군에서도 팽목항 기억공간의 철거를 통보하고 있지만 우리가 계속 지켜야하는 의무가 아닐까 합니다.

우리는 여전히 세월호 참사와 같은 대형 참사의 한 가운데 서 있으며, 세월호 참사 이후 7년이 지나도 광화문과 팽목항에서 그들을 기억하고자 하는 것은 현재의 우리를 돌아보게하는 성찰의 이정표로 일상적인 참사를 마주하고도 바뀌지 않는 대한민국의 민낮을 보게 됩니다.

서울 광화문과 마찬가지로 팽목항 기억공간에 관한 것도 팽목기억연대에서 수차례 만나고자 하였으나 진도군수는 한차례도 만나주질 않고 진도군민 여론이라며 빙자해 팽목 개발사업을 방해한다고 여론을 호도해 왔습니다.

세월호 참사 7년 팽목항 개발공사가 막바지에 이르러 진도군은 기억공간에 위치한 건축물에 대해 민원이 들어 왔다면서 현재 자진철거를 요구하고 행정대집행을 하겠다고 협박을 하고 있습니다.

광화문 광장(국토부)이 서울시 땅도 아니면서 서울시는 철거를 요구하고 팽목항(전남도)도 마찬가지 진도군 땅도 아니면서 철거를 요구하고 있는 등 기억을 지우려는 사람들과 다르게 우리가 팽목의 기억을 지켜고자 하는 것은 더이상 이땅에 세월호 참사가 더이상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것이다.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 여론을 돌리기 위해서 국도18호선 4차로 예타면제와 국민해양안전관을 짓겠다고 했으나 국도18호선은 2차로 공사로 변경되고 국민해양안전관은 세월호 참사 이전 계획했던 청소년수련시설을 ‘국립과 해양안전’ 명칭만 넣었기에 현재 진도군은 국립해양안전관 운영비를 요구하며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빌미로 팽목416기록관은 강하게 거부하고 있습니다.

여러 참사에서 반면교사하지 못하고 대물림하는 우를 다시 반복 할 수 있음을 인식하고 잊지 말아야 할 사회적 참사 현장에 대한 기억 여행, 다크투어의 한 지점 또는 치유 될수 있는 것은 참사 현장을 기록하고 기억하기 위한 기록공간을 조성하는 것 부터 시작된다고 봅니다.

팽목항 기억공간 조성 참여단 모집 http://416.co.kr 팽목항 416공원 조성 요구 서명 http://416park.co.kr 세월호 참사 관련 사안이 있을때 마다 http://2014416.comhttp://20140416.com 그 밖의 많은 416관련 도메인 서비스를 계속하고 있는 이유는 세월호 참사의 현장에 살고 있다는 주민으로 부채감 일 수 있겠지만 반면교사하여 세월호 참사와 같은 아픔이 더이상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며 안전한 대한민국에서 살고 싶기 때문입니다.

전라남도 사회적거리두기 3단계 격상

팽목항 기다림과 기억예술마당 61

2015년 6월 27일 시작으로 세월호 인양과 미수습자‘기다림의 공연’ 23회와 세월호 인양후 잊지 않기 위한 ‘기억예술마당’37회를 열고 이제는 ‘팽목항 기다림과 기억예술마당’으로 매월 마지막주 토요일에 전국예술인들이 모입니다.

세월호 참사 관련자 처벌 할 수 있는 공소시효가 9개월 남짓으로 진상조사나 관련자 처벌이 되지 않는다면 제2의 세월호 참사는 일어날 수 밖에 없어 미래세대를 위해서라도 반면교사 하고자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결코 잊지 말아야 하기 때문에 ‘기다림과 기억예술마당’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오는 7월 25일 토요일 오후4시16분 팽목항 세월호 기억관 앞마당에서 ‘팽목항 기다림과 기억예술마당 예순한번째’를 감염병(코로나19) 예방차원에서 다시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격상으로 많은 분들이 참석 못하겠지만 소수라도 함께 하길 바랍니다.

국민해양안전관은 진도항에서 서망항 사이에 7만8천996㎡ 대지에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건축 중으로 초·중·고생과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한 교육 안전 체험관, 해양안전정원(추모공원), 유스호스텔 등을 위해서 공사중이다.

국민해양안전관은 당초 국가균형발전 차원에서 전국의 수련관이 없는 곳인 진도에 수련관을 짓는 계획이 있었으나 세월호 참사 후 진도에 해양안전에 관하여 관심이 높아 변경한 계획의 일환으로 국가균형발전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었지 세월호 참사로 인하여 진도에 해양안전관 들어서고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우리모두가 팽목분향소가 있던 자리에 4·16기록관, 기억공간 조성을 2018년부터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는 이유는 팽목항과 1km 정도 떨어진 거리에 조성 될 해양 안전교육 시설인 국민해양안전관의 ‘부속공간’에 소속되어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체험시설로서 희석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요구함을 알 수 있습니다.

진도항 개발로 세월호 참사 현장이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에 시민단체들은 팽목기억연대 이전의 대책기구인 ‘팽목 기억공간 조성을 위한 국민비상대책위원회, 이하 팽목기억연대 연석회의’ 차원에서 △희생자 기림비 건설 △소공연이 가능한 4·16공원 조성 △옛 안치소를 알 수 있는 표지석 설치 △4·16기록관 등을 요구해 왔다.

정부나 지자체에 요구하는 것은 기림비, 표지석 등으로 세월호 사고 수습 장소였다는 상징성을 보여줄 순 있지만 사람들이 팽목항이란 공간에만 머무르도록 하면 “세월호 참사의 슬픔만 부각 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세월호 참사 수습장소의 기록과 체험을 나눠주는 것은 세월호 참사와 같은 비극이 더이상 잃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반면교사 의미가 크다는 것을 강조한다.

또한, 세월호 선체 유치 진도군민연대에서는 세월호 선체의 거치장소로 세월호 참사 당시 전국민 뇌리에 진도 팽목항이 각인되어 6년이 지나도 뚜렷하여 팽목항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고 지난 2018년 5월 18일 세월호 선체 조사위원회가 국민 1천명을 대상으로 세월호 거치장소를 묻는 설문조사 결과 진도37%로 가장 높았고 2018년 12월11일 진도사랑연대회의가 의뢰한 진도군민 대상 여론조사에서 60.2%로 진도군민들도 세월호 유치를 바라고 있다.

하지만, 진도군수가 팽목항에 세월호 기록관 마져도 막고 팽목항 석탄재 매립 공사를 강행하므로서 진도군민들과 갈등을 빚고 세월호 선체유치 동력마져도 분산 시켜가며 세월호 참사를 잊혀지도록 하고 있어 세월호 유치 진도군민연대는 문재인 정부에 세월호 선체 진도팽목항 거치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팽목항 서른네번째 기억예술마당

세월호 참사의 진실이 밝혀지는 날까지 매월 마지막주 토요일에 팽목항 세월호기억관 앞마당 또는 팽목항 방파제 등대앞에서 세월호 참사를 잊지않고 기억하기 위해서 사회각층에서 행동하는 예술인들이 모여 공연을 연다.

오는 2019년 12월 28일 오후2시30분부터 팽목항 등대에서 필봉굿보존회의 길놀이 시작으로 오후3시04분부터 팽목항 세월호 기억관 앞마당에서‘0416 기억예술마당 서른네번째’을 여러 예술인들과 필봉굿보존회원들이 전국에서 모여들어 판굿을 열기로 하였다.

우리나라는 비행기와 열차사고가 나면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가 운영되어 그 사고에 대한 철저한 사고 원인 분석과 대책을 세워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하고 있으나 유독 여객선 사고에서는 사고에 대한 조사가 제대로 되지 않고 반면교사하지 못하고 있음을 인식하여야 한다.

세월호 사고에 대한 제대로 된 조사나 대책이 논의 되지 못하고 정권이나 정치인들에게 이용 당하다보면 제2의 세월호 사고는 일어날수 밖에 없으므로 우리는 세월호 희생자들과 같은 미래세대를 위해서라도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결코 잊지말아야 하기 때문에 기억예술마당을 멈출수가 없다.

우리는 참사에 대해‘기억하기, 진실 밝히기, 되풀이 하지 않기’라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를 치유하고 공동체를 회복해 가야 할것으로 참사현장 기록물을 기록 할 수 있도록 반드시 팽목기억공간 건립은 중요합니다.

우리는 각종사고 재난에서 당신의 가족들이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들 처럼 되었을때 누가 억울한 죽음을 밝히고자 하겠으며 수궁하겠는지 묻고 싶다 국가를 위해 자신의 가족의 죽음의 진상을 적당히 밝히고 묻히게 되더라도 아무렇지도 않을지도 되묻고 싶다.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한 행동하는 양심들이 모여 매월 마지막주 토요일에 팽목항‘기억예술마당’은 지난 2015년 6월 27일 첫 공연을 한 이후, 비가오나 눈이오나 빠짐없이 전국예술인들이 모여 세월호 참사 추모 및 기억공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를 잊지않기 위해 지난 5년간 미수습자‘기다림의 공연’23회와 세월호 인양후 잊지않기 위한 ‘기억예술마당’을 33회를 하였으며 이번 기억예술마당까지 다가오는 12월 28일 팽목항에서 서른네번째‘416기억예술마당’하게되면 총57회째 예술마당을 열고 있습니다.

참고로 토착 왜구와 일베 족속들이 악용하지 못하게 팽목항 기억공간 조성 참여단 모집 http://416.co.kr 팽목항 416공원 조성 요구 서명 http://416park.co.kr 세월호 유가족 방송 http://416tv.net 세월호 참사 관련 중요 사안이 있을때 마다 집중 할 수 있도록 바꿔가며http://2014416.comhttp://20140416.com 그 밖의 많은 416관련 도메인 서비스를 계속하고 있는 이유는 세월호 참사의 현장에 살고 있다는 주민으로 부채감 일 수 있겠지만 반면교사하여 두번다시 세월호 참사와 같은 아픔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저또한 안전한 대한민국에서 살고 싶기 때문입니다.

팽목항 서른세번째 기억예술마당

세월호 참사의 진실이 밝혀지는 날까지 매월 마지막주 토요일에 팽목항 세월호기억관 앞마당 또는 팽목항 방파제 등대앞에서 세월호 참사를 잊지않고 기억하기 위해서 사회각층에서 행동하는 예술인들이 모여 공연을 연다.

오는 2019년 11월 30일 오후3시04분 팽목항 세월호 기억관 앞마당에서‘0416 기억예술마당 서른세번째’을 매번 416기억순례길과 팽목항 참사 수습현장 지키기에 앞장서고 있으며, 그동안 광주5·18민주광장에서 열어오던 ‘예술인행동 장’ 이 함께 한다.

세월호 참사에서 많은 사람들의 공감으로 다가온 팽목항은 여객선터미널 공사장으로 변모하여 팽목방파제 빨간등대 리본은 약속과 희망의 상징이지만 모진 바닷바람에 찢겨나가고 기다림의 조형물들도 세월에 헤지고 빛이 바래가고 있습니다.

현재 진도군은 진도항개발사업을 추진하면서 기억공간조성과 관련하여 세부일정을 밝히지 않고 있고 전남도지사의 약속이행을 거부하고 있는 가운데 팽목 기억공간 조성 요구안이 전남도와 해수부를 유랑하다 다시 원점인 진도군으로 돌아왔지만 팽목항 개발에 몰두되어 기억공간조성에 관심이 없는것 같습니다.

우리는 참사에 대해‘기억하기, 진실 밝히기, 되풀이 하지 않기’라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를 치유하고 공동체를 회복해 가야 할것으로 참사현장 기록물을 기록 할 수 있도록 반드시 팽목기억공간 건립은 중요합니다.

우리는 각종사고 재난에서 당신의 가족들이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들 처럼 되었을때 누가 억울한 죽음을 밝히고자 하겠으며 수궁하겠는지 묻고 싶다 국가를 위해 자신의 가족의 죽음의 진상을 적당히 밝히고 묻히게 되더라도 아무렇지도 않을지도 되묻고 싶다.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한 행동하는 양심들이 모여 매월 마지막주 토요일에 팽목항‘기억예술마당’은 지난 2015년 6월 27일 첫 공연을 한 이후, 비가오나 눈이오나 빠짐없이 전국예술인들이 모여 세월호 참사 추모 및 기억공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를 잊지않기 위해 지난 5년간 미수습자‘기다림의 공연’23회와 세월호 인양후 잊지않기 위한 ‘기억예술마당’을 32회를 하였으며 이번 기억예술마당까지 다가오는 11월 30일 팽목항에서 서른세번째‘416기억예술마당’하게되면 총56회째 예술마당을 열고 있습니다.

참고로 제가 토착왜구와 일베 족속들이 악용하지 못하게 팽목항 기억공간 조성 참여단 모집 http://416.co.kr 팽목항 416공원 조성 요구 서명 http://416park.co.kr 세월호 유가족 방송 http://416tv.net 세월호 참사 관련 중요 사안에 대해 집중 할 수 있도록 http://2014416.com 과 http://20140416.com 그 밖의 많은 416관련 도메인 서비스를 계속하고 있는 이유는 세월호 참사의 현장에 살고 있다는 주민으로 부채감 일 수 있겠지만 반면교사하여 두번다시 세월호 참사와 같은 아픔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저또한 안전한 대한민국에서 살고 싶기 때문입니다.

진도동학농민군 후손을 찾습니다.

동학(東學)의 종교조직을 이용한 전봉준·김개남·손화중 등 개혁지도자를 중심으로 농민·도시민·소상인·몰락양반·이서 등 봉건사회 해체과정에서 몰락한 계층이 광범하게 참여한 반제·반봉건 근대화 투쟁운동으로 1894년 농민전쟁·동학난·동학 혁명·동학혁명운동·동학농민전쟁이라고도 한다.

농민전쟁의 진원지인 호남지방은 전통적으로 대지주에 의한 봉건적 수탈이 심하고, 강경·법성포·줄포·논산포 등의 포구·개항장은 대일 미곡수출이 활발한 지역이었다. 미곡무역에 편승한 지주층의 지주제 강화로 인해 소농·빈농층이 몰락했으며, 농촌사회 내부의 분화 및 계급대립이 전면에 나타났다.

이러한 상황에서 동학의 교세가 급속히 확대되었으며, 봉건사회를 변혁하려는 일군의 혁명적 지식인들과 결합하게 되었다. 호남지역에서는 유형원의 학문적 전통을 잇는 부안(扶安) 동림서원(東林書院)과 오랫동안 강진에 유배되었던 다산 정약용 등 실학자의 진보적 사상이 암암리에 몰락양반을 비롯한 지식인들에게 유포되고 있었다.

농민전쟁의 지도자인 전봉준도 그중의 한 인물이다. 이들은 기존의 군현단위의 농민봉기가 가진 지방적 분산성을 극복하고 체제개혁을 위한 대규모 농민전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각지의 농민들을 조직·동원할 수 있는 수단으로써 광범위하게 교세를 확장하던 동학조직을 주목했다.

동학(東學)은 몰락양반 최제우가 창시한 종교로, 후천개벽(後天開闢)을 통하여 만민평등의 지상천국을 건설하려 했다. 동학의 이념을 실현하는 방법으로는 ‘무위이화'(無爲而化)라는 관념적 차원에 머물렀으나 만민평등의 원리를 기반으로 한 반봉건 의식과 척왜양(斥倭洋)이라는 반침략의 민족 논리를 바탕으로 깔고 있었다.

동학교단은 1892년 11월 삼례집회와 1893년 3월 보은집회에서 교조신원운동이라는 종교적 운동을 벌였다. 이때 전봉준 등 남접세력은 동학조직을 이용하여 농민군을 결집시키고 민족적·계급적 요구를 실현하기 위해 혁명을 기도했다. 이들은 교조신원운동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정치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금구집회(1893. 3)를 소집, ‘척왜척양'(斥倭斥洋)과 ‘수령의 불법 침학 반대’를 외치면서 사회혁명의 기반을 다져나갔다.

특히, 동학이 처음 진도에 들어온 시기는 1892년 1월께 나주출신 나치현으로 진도동학 교세는 다음해인 1893년 충청도 보은집회를 계기로 크게 확산되었으며 1894년 5월께는 동학농민군지도자 박중진, 김수종, 나치현 등이 이끄는 농민군이 진도부를 점령, 집강소를 설치하고 과감한 개혁을 단행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렇듯 진도동학농민혁명군의 기세가 인근 목포, 장흥, 나주, 무안 등지까기 확산되어 영향을 끼치며, 연합농민군부대를 편성해 반봉건, 근대화, 반외세 및 자주화를 위한 혁명을 이뤄 나간 것으로 확인됐다.

진도동학농민혁명군이 1894년 11월 공주 우금타 전투와 12월 장흥 석대 전투에서 패배 후 진도로 집결, 진도농민군과 연합하여 남하한 조선정부군과 일본군을 상대로 최후 항쟁을 벌인 것으로 밝혀짐에 따라 최후 항쟁지이며 동학군의 처형장소인 진도군 진도읍 송현 마을에 역사공원 및 전시관 건립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진도동학농민혁명군 지도자 유골은 1906년 9월 일제 통감부 권업모범장 목포출장소 직원인 ‘사토 마사지로’가 진도에서 도굴해 일본으로 가져갔습니다. 유골에는 “한국 동학당 수괴 수급”이라 쓰여 있고, 별도 메모에 “촉루(해골) 명치 27년(1894) 한국 동학당 봉기가 있었다.

지도자 유골은 1995년 7월 일본 북해도대학 인류학 창고에서 발견된 것으로 아이누족 인권단체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일본 언론에서 보도하여 한국에도 알려지게 되어 이후 외교통상부와 (사)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가 유골 봉환을 요구했습니다.

진도군이 전주지방법원에‘유골현상변경금지 가처분 신청’을 2019년 5월 22일 제기했으나 5월 28일 기각하여 전주에 진도동학농민혁명군 유골이 안치되었습니다. 동학농민혁명을 동학란으로 농민군은 폭도로 지난 110여년 간 규정되어 왔습니다.

전라남도 진도는 그들이 가장 창궐했던 곳이었는데 그들을 평정하고 돌아올 무렵에 그 수창자 수백명을 죽여서 시체가 길을 가로막고 있을 정도였다. 수괴자는 효수하였는데 이 촉루는 그 가운데 하나로 그 섬을 시찰할 때 채집한 것이다.”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민족정기를 세우고 동학농민혁명에 참가한 자와 그들 후손의 명예 회복을 목적하여 제정한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2004년 9월부터 시행되어 왔음에도 본 법의 취지와는 달리 지난 15년 동안 관계 부처, 전주시측은 유골에 대한 권리만을 주장하며 오늘에 이른 것입니다.

1996년 5월 유골을 한국에 봉환하여 곡절 끝에 전주역사박물관 수장고에 보관해 오던 중 2015년 2월 화장 후 매장한다하여 진도군, 진도군의회, 진도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동학 학술단체, 시민단체 등이 화장을 반대하고 진도에 봉환해 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전주기념사업회와 전주시는 유골 반환을 거부하고 전주에 2015년 4월 16일 매장한다고 공표하여 이에 대해서도 진도군 등은 반대하며 후손을 찾는 유전자 감식을 위해 유골의 보전과 진도군에 봉환해 줄 것을 누차 요구했었습니다.

전주시측은 유골에 대해 ‘역사문화벨트조성사업’을 계획하여 4년이 지나서 전주동학농민혁명 녹두관에 2019년 6월 1일 안장하겠다고 하였던 것입니다. 이에 현재까지 역사기록과 연구조사에 나타난 동학농민혁명 지도자급의 진도 사람은 15명입니다.

진도 사람 15명 고인들의 넋을 기리고 진도인의 명예 회복을 위해서도 각 문중의 호적, 족보와 구전 등 자료를 수소문 하는 바, 진도동학농민혁명군 진도 봉환에 뜻을 같이하는 분들이 동참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진도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공동대표 박주언 o1o-6255-5815, 박영상 o1o-7170-3200, 사무국장 조성문 o1o-2662-1392, 홍보담당 박준영 o1o-2934-3119 연락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