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의 지정생존자들

참사를 기억하고자 팽목기억공간을 보존해야

우리는 2014년 세월호 참사를 생방송으로 목격하기 전까지 재난재해는 남의 일처럼, 자연 재해처럼 어쩔 수 없는 일로 타인이 운이 나쁘고 내가 운이 좋은것일뿐 우리는 세월호 참사를 생생하게 목격하면서‘내가 아니라 다행’이라며 안도하면서 지정생존자들로 희생자들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삼풍백화점 참사 당시에 전 국민이 한 사람씩 살아나올 때 기억이 있었기에 세월호 참사 당시에도 기대를 하고 한명이라도 구조하기를 바랬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고 백화점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사업은 하지 못하고 참사 자리에는 아파트가 들어서고 땅값 떨어진다고 추모비는 양재숲으로 밀어내고 세월호 참사에서도 팽목항 개발 사업에 방해된다고 팽목기억관을 밀어내는 똑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다.

세월호 참사에서 해경정장 한명 빼고 모두 무혐의 처분나고 책임자들은 면죄부 받게되면서, 7년전 참사 당시처럼 우리들 가슴 뜨거웠다면 무혐의 판결이 났을까? 시민들의 관심이 식은 틈을 타서 이렇게 판결을 내리는구나 그렇다면 법과 제도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올바른 시민의식이 굳건히 자리 잡고 있다면 절대로 지금처럼 잊혀지고 방관하는 일은 절대 있을수가 없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대한민국 국민 대부분이 7년전 광화문 광장에 모여 책임자들을 처벌하기 위한 촛불을 들었고 우리는 각종 부조리로 인한 대형참사가 반복 될 수 밖에 없은 사회를 벗어나기 위해 세월호 참사 부터라도 잊지말자고 했던것 처럼 우리는 그렇게 참사 현장부터라도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사람을 가리지 않고 성수대교는 일주일에 한 번씩 붕괴하고, 삼풍백화점은 3개월에 한 번씩 무너지며, 세월호는 두 달에 한 번씩 침몰하고 있으며, 그렇게 하루 평균 7명, 1년에 2천여 명이 죽어나가고 있다.

지금처럼 국가가 국민들의 아픈 기억을 보듬어 주지 않고 아픔을 외면하면서 선진국으로 나간다는 것은 가당치 않으며, 현재 우리가 약속했던 세월호 참사 당시 희생자들를 안타까워 했던 마음마져도 잊고 그들을 기리는 것도 허용하지 않으려 하고 있음을 목도하고 있다.

세월호를 기억하려면 인천, 안산, 진도 팽목항에 기억공간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세월호 침몰로 사망한 영혼들도 세월호와 아무 상관도 없는 곳이 아닌 참사지역에 있기를 바랄 것이나 촛불 혁명의 역사적 공간적인 광화문의 상징성을 생각하면 쉽게 판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진도군은 팽목항에 기억관과 성당, 강당으로 쓰이는 컨테이너가 진도항 개발사업 터 안에 있어 철거해야 한다는 태도로 내년 4월까지 팽목항 일대에 편의·접안 시설, 여객선 터미널, 도로 등을 조성하는 사업에 있으니, 국민해양안전관에 추모공간을 만들겠다며 팽목항 기억관은 절대 안된다고 한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족들과 팽목기억연대는 팽목항이 가진 의미를 살려 지금 자리에 추모공간을 마련해야 하는데 팽목 기억관마저도 철거하게 된다면 세월호 슬픔을 간직한 현장은 모두 사라지기 때문에 기억관을 유지하게 해달라 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것은 전라남도 차원에서 전쟁이나 학살처럼 비극적인 역사 현장이나 대규모 재난재해가 일어났던 곳을 돌아보며 교훈을 얻는 여행 ‘다크투어리즘(Dark Tourism·역사교훈여행)’을 활성화 시키기 위한 본격적인 움직임이 일고 있다.

또한, 누군가의 아픔을‘관광상품’으로만 소비한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 만큼 다크투어 상품 개발시 섬세한 접근이 요구되고 참사 현장을 찾는 방문객이 끊이지 않고 있어 지역민들과 소통하며 기억공간을 추진하는 것이 중요 할 것이다.

팽목항 세월호 참사 수습 현장도 미국 9·11 테러 현장‘그라운드 제로’, 독일 베를린‘홀로코스트 메모리얼 공원‘ 등 처럼 재난·재해 현장을 둘러보며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 7년전 각자의 마음속 약속을 지켜나가 봅시다.

섬사람들이 먼저 변해야 한다.

제가 이번에는 참석을 못하니 아쉽지만 지난해 11월 (사)한국글로벌섬재단 발기인으로 참석하였을때 마음을 이해 할련지 모르겠습니다.

그자리에 진도사람들 이하 공무원들은 찾아 볼수 없었고 그때 마음에선 그렇지 그래서 진도가 전국에서 최고 낙후지역으로 남아있구나 작년 전국에서 가장 낮은 땅을 소유한 지역이고 소외되는 구나 지금 신안섬들은 육지로 연결되고 있는데 그런데 간혹 착각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자신 뭔가 해서 이뤄졌다고 뽐내기는 좋아합니다. 그러나 실상의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습니다.

자신의 지위가 높아지고 주민들의 대표자가 되면 뭔가 이뤄서 다음을 도모하기 위해 치적홍보에는 열을 올리고 지역의 미래에 대해서는 등한시 합니다.

어제 16일 5대 도서항로 섬주민 대표회의가 있는줄도 모르고 좋은 기회도 발로차면서 또 내일 모레 19일 목포 신안비치호텔에서 열리는 (사)한국글로벌섬재단 창립총회가 있으면 관심을 갖여야 하는데 무시하고 이튿날(20일) 오후 2시부터 ‘국립섬발전연구진흥원 설립방안 모색’이라는 주제로 국회에서 개최되는 ‘국회 섬 발전 토론회’와 패키지로 연계 운영하게 되는데 관심도 없습니다.

이처럼 도서에 사는 사람들에게 역사적인 전환점이 될 사건들을 등한시하고 맨날 소외지역이라고 아우성만 있고 스스로가 소외지역으로 만들고 있음을 올해 8월 8일 섬의날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것도 알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제발 그냥 섬에 태어났다고 모르는게 아니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것 이제 스스로 변해야 합니다. 그렇게 살지 맙시다!

한국의섬 독도를 말하다.

한국의섬은 올바른 섬의 정보를 제공하고 대한민국의 섬들을 올바로 홍보하는데 목적이 있다.

그래서 관심을 갖는 것이 내가 살고 있는곳이기에 전라남도 섬 위주로 홍보하지만 그래도 우리나라 대표 섬 독도와 대마도에 관심은 많으나 개인이 활동하기란 쉽지 않지만 독도는 한국의섬을 운영하는 목적중에 하나다.

그런전차로 독도에 관하여 전문가가 아니라서 국민으로 ‘독도’에 대하여 알아보면서 주장을 해본다.

먼저, 독도의 날은 2000년 8월 민간단체인 독도수호대가 고종이 독도를 울릉도의 부속 섬으로 정하는 대한제국 칙령 제41호 제정한 1900년 10월 25일을 기념하기 위해 제정하였다.

그리고 2012년 10월 28일 국가해양부는 국가지명위원회를 통해 공식적으로 동도의 봉우리를 우산봉, 서도의 봉우리를 대한봉이라 명명하였고, 바위로 분류되던 것은 탕건봉으로 재분류해 독도는 3개의 봉우리를 가진 섬이 되었다.

대한제국 칙령 제41호를 본다면 1899년 울릉도의 산림 채벌권을 가진 러시아가 대한제국 정부에 일본인들이 불법으로 울릉도의 삼림을 벌채해 가고 있으니 이를 금지해 달라고 외교 문서로 강력하게 항의해왔다. 이에 대한제국 정부는 이를 금지함과 동시에 울릉도 이주민에 대한 행정 관리를 위해 1899년 5월 배계주를 울릉도 도감(島監)으로 재임명하여 파견했다.

또한 러시아측과 일본측의 의구심을 해소하기 위해 배계주와 함께 부산항 세무사로 근무하고 있던 외국인 세무사를 동행시켜 일본인의 울릉도 침입 실태를 조사 및 보고하도록 하였다. 그 보고서에 의하면 1899년 5~6월 당시 울릉도에는 수백 명의 일본인들이 집단적으로 불법 침투하여 촌락을 형성하고 있었으며, 울릉도의 삼림을 지속적으로 벌채하여 선박을 통해 일본으로 운반해가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곡식을 비롯한 각종 재화의 밀무역도 폭력적으로 자행하고 있었다.

울릉도 도감 배계주는 이와 같은 사실의 보고와 함께 울릉도 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이들 일본인들에 대한 중앙 정부 차원의 강력하고 적극적인 조치를 요청하였다. 이러한 실태를 보고받은 대한제국 정부는 주한 일본 공사를 불러 울릉도에 불법 밀입도한 일본인들의 본국 귀환은 물론, 밀무역을 자행한 죄과를 ‘조일수호조규’[1876] 약정에 의거 조사·징벌하여 그 폐단을 영구히 근절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러한 요구에 대해 일본 공사는 이 경우 한국 관헌이 체포하여 가까운 일본 영사에게 넘기도록 되어 있다는 ‘조일수호조규’의 규정을 내세워 책임을 회피하였다. 이에 대한제국 정부는 근본 대책 수립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1899년 12월 내무관리 우용정(禹用鼎)을 울릉도 시찰위원으로 임명하여 일본 측과 제3국 외국인을 포함한 조사단을 파견하여 일본인의 불법 자행의 실태를 재조사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렇게 해서 1900년 우용정(禹用鼎)을 그 대표격인 시찰위원으로 하고 감리서(監理署) 주사 김면수(金冕秀), 부산 해관 세무사 라포트(E. Raporte) 및 봉변(封辨) 김성원(金聲遠), 그리고 부산에 주재하고 있던 일본 부영사관보 아카쓰카 쇼스케[赤塚正助] 및 경부(警部) 1명으로 구성된 조사단이 5월 31일 울릉도에 도착하여 6월 1일부터 5일간 세무사 라포트의 입회 아래 그 실태를 조사하였다.

조사 이후 대한제국은 울릉도·독도에 대한 행정 관리를 강화하기 위한 방안 수립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이 지역에 대한 관제의 개정 및 격상을 단행하였다. 즉 대한제국은 1900년 10월 25일 「대한제국 칙령 제41호」를 통해 울릉도를 1900년 10월 24일 강원도 울도군으로, 그리고 기존의 울릉도 도감을 울도군 군수로 격상시키는 관제 개정을 단행하여 공표하였던 것이다. 이와 동시에 독도 역시 울도군 군수의 관할 하에 두었다.

1900년 대한제국 칙령41호에는 울릉전도와 죽도, 석도를 관할하게 한 기록으로 ‘석도’는 돌로된 섬이라는 의미로 전라도에서 독도로 이주한 초기 이주민들이, 전라도 방언으로 돌을 ‘독’이라고 불렀던 것에서 기인하여 돌도가 지금의 ‘독도’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것이다.

더 오래된 역사적 기록으로 삼국사기에는 512년(신라 지증와 13년) 군주 이사부가 울릉도를 중심으로 해상왕국 우산국을 정벌하면서 독도가 우산도(于山島)로 불렸다, 1432년에 편찬된 세종실록지리지에 우산과 무릉 두섬은 날씨가 맑은 날 서로 바라볼수 있다고 되어 있다.

한편, 독도는 한류와 난류가 교차하는 조경(潮境)수역으로 플랑크톤이 풍부해 다양한 어종이 분포하고 있다.

또한, 독도를 분쟁화 할려는 일본의 영토 침략행위의 목적으로는 해양영토의 야욕과 함께 해저에는 미래에너지 자원으로 메탄이 주성분인 천연가스가 얼음형태로 고체화된 하이드레이트가 다량 매장되어 있다고 알려지고 있다.

이런 독도의 가치를 안다면 시대의 악마족속인 일본 침략세력과 동급인 다까기마사오를 우상으로 모시는 곳에서는 독도를 말할 자격이 없으며, 일본의 앞잡이를 후손에게 자랑삼아 가르치는 꼴이니 통탄할일이다.

올바르지 않는 역사관으로 무장된 아직도 정신 못차리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 정상적인 나라가 될려면 박정희 팔이가 없어져야 하며 국내에서 먼저 독도의 역사를 제자리로 돌려놓고서 일본에게 독도가 우리땅이라고 주장 할 수 있다고 본다.

한국의섬 독도(獨島)를 알아보자!

한국의섬 독도(獨島)를 알아보자!

독도(獨島)의 어원은 한자 표기대로 고종 때 주민들을 울릉도로 이주시킨후 그곳에 정착한 전라도 출신 어부들에 의해 전라도 말 ‘돍섬’ , ‘독섬’으로 불리다가 우리말‘독도’가 되고 한자표기로‘獨島’가 되었다.

대한제국 칙령 제41호(1900)에는 한자로 石島(석도)로 적고 있다.  현재의 독도 지명은 1906년 심흥택 울릉군수의 보고서에 처음 등장한다. 『세종실록지리지』(1454)에는 독도와 울릉도를 우산(于山)과 무릉(武陵)으로 불렸고 신라 때는 두 섬을 우산국으로 불렸다고 기록하고 있다. 『동국문헌비고』(1770)와 『만기요람』(1808)에도 독도를 우산으로, 『성종실록』에는 독도가 삼봉도(三峰島)로 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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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는 동도와 서도를 비롯하여 89개의 부속 도서로 구성되어 있고, 총면적은 187,554m2이며, 그중 동도가 73,297m2, 서도가 88,740m2, 그 외의 부속 도서를 합한 면적은 25,517m2이다. 독도에서 가장 높은 곳은 서도 정상부로서 해발고도 168.5m이다. 동도의 최고봉은 98.6m이며, 맑은 날씨에 울릉도의 북동쪽 끝인 울릉군 북면 천부리 석포에서 독도가 관측이 된다.

그 모습은 동도와 서도가 붙어 있는 상태이며 서도의 북단에 솟은 탕건봉도 목측이 가능하다. 이것은 지리적으로 독도가 한국의 영토임을 보여 주는 증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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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민간항공기구(ICAO)는 국가별 비행 영공을 식별하기 위한 비행정보구역(FIR, Flight Information Region) 설정에서 독도 상공을 인천비행정보구역(Incheon FIR)으로 규정하고 있다(국토해양부 항공정책실). 일본은 후쿠오카 FIR, 북한은 평양 FIR로 규정하고 있다.

1951년 미 태평양 공군이 설정한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에 독도와 DMZ를 포함하고 있고 미 공군에서 1987년에 발행된 항법지도에도 KADIZ 내에 독도가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1969년 9월 방위청 훈령 제 36호(방공식별권 비행요령에 관한 훈령)에 의해 설정한 일본방공식별구역(JADIZ)의 경우와 1972년 5월 오키나와 반환에 따라 JADIZ 범위를 확장할 때에 JADIZ에 독도를 포함시키지 않았다. 따라서 일본이 독도 상공을 포함하여 설정된 KADIZ에 관하여 아무런 이의제기를 하지 않은 것은 독도에 관한 한 그 상공을 인정한 행위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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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에서 독도를 다르게 인식하게 된것은 식민지와 무역 확장, 자원 확보를 위해 서구의 많은 탐험선, 상선(商船), 군선(軍船) 등이 세계를 다니면서 새로운 섬이 발견되면 그들의 해도에 그 이름을 올린다. 그중 하나가 국제적으로 많이 알려지면 그 이름이 채택된다. ‘리앙쿠르’ 명칭의 경우도, 1849년에 프랑스의 포경선 리앙쿠르(Liancourt)호가 동해에서 독도를 발견하면서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로 거대한 바위처럼 보이니 그들의 배 이름을 따서 리앙쿠르 암(Liancourt Rocks)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또한 동해(East Sea)는 일찍이 고래가 많아 유럽인들은 조선해(Sea of Corea)와 함께 고래해(Sea of Whale)로 부르기도 했다.

일본 식민지배 전부터 역사적으로 조선 땅인 독도를 일본의 에도 막부는 독도를 ‘마츠시마’로 부르고 ‘다케시마’로 불린 울릉도와 함께 두 섬을 일본인의 도항과 거주가 금지된 조선 땅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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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9년 조사를 위해 조선에 파견된 외무성 관료는 그 다음 해 제출한 보고서 ‘조선국교제시말탐서(朝鮮國交際始末探書)’에 타케시마(울릉도)와 마츠시마(독도)는 조선 부속이라고 썼다.

1877년 당시의 최고 국가 기관인 태정관(太政官)이 ‘일본해 내 다케시마와 기타 한 섬을 판도 외로 정한다(주- 다케시마 는 울릉도, 그 외 한 섬은 독도를 뜻함)’는 지령을 내렸다. 두 섬은 판도 외(版?外), 즉 일본 영토가 아니다는 공식 선언이다.

1894년 메이지 정부가 국가사업으로 제작한 지도가 ‘대일본관할분지도(大日本管轄分地圖)’로 발간되었는데 두 섬은 기재되지 않았다. 일본 해군은 ‘조선수로지(水路誌)’1894년판과 1899년판에 두 섬을 기재했다. 이것은 독도가 조선 영토로 인식하고 있던 것을 나타낸다.

1900년 대한제국은 칙령41호에서 울릉도 주변에 있는 ‘석도(독도)’가 자국 통치하에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메이지 정부는 이견은 내지 않았다.

메이지 정부도 1905년 편입까지는 독도를 조선 땅으로 인식하고 러일 전쟁이 한창인 때 군사 시설 건설을 목적으로 함과 동시에 한국에 대한 식민지화 정책을 격렬하게 추진하는 상황 속에서 독도를 강제로 약탈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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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필리핀을, 영국은 인도를, 일본은 조선을 취한다’는 미영일간의 제국주의적 합의를 배경으로 하여 1904년 2월 일본군은 러일 전쟁에 돌입함과 동시에 인천에 상륙한 후 한성을 제압했다.

같은 달 한일의정서 조인을 강요, 5월 대한(對韓)시설강령 각의 결정, 9월 제1차 한일협약을 맺었다. 러시아 해군이 일본 수송선을 가라 앉히는 상황 속에 11월 러시아에서 ‘리앙쿠르 도’로 불리던 독도에 러시아 해군 감시용 망루 건설이 가능하다고 예비 조사로 확인했다.

다음해인 1905년 1월 메이지 정부가 ‘리앙쿠르 도’를 ‘무주지(無主地)’로 단정하여 영토 편입을 각의결정해서 ‘다케시마’로 명명했다. 그 때 관계국인 조선과의 협의도 관보를 통한 공시도 없었다. 그 해 7월 독도에 망루를 착공하고 8월부터 감시 활동을 시작했다.

즉, 러일전쟁을 이기기 위한 군사 시설 건설을 목적으로 한 독도의 영토 편입을 비밀리에 강행한 것이었다. 이것은 전시임을 이유로 하여 타국령임을 인식하면서도 영토 편입을 한, 그야말로 제국주의적인 영토 획득이었다.

그것은 1905년 10월‘을사보호조약’식민지배와 함께 독도 침탈이 이루어진 것이었다. 독도(獨島)는 역사(歷史)적으로, 지리(地理)적으로, 국제법(國際法)상으로 대한민국의 영토이다.

독도의 생태학적 특징으로는 해상에서 만조 시에도 늘 물 위로 드러나는 바위나 암초, 섬 등에 대하여 영유 국가에서 이름을 붙이면 그 이름이 국제적인 공식 이름이 된다. 따라서 외국이나 국제 사회에서 독도 외에 어떠한 공식적인 이름을 붙일 수가 없다.

과거 우리의 역사적인 기록에는 물론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기록이 있고, 일본의 역사 기록(지도와 문헌)과 공식적인 국가 기록에도 독도는 조선(한국)의 땅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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