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목항 서른다섯번째 기억예술마당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과 관련자들의 처벌이 이루어지는 날까지 매월 마지막주 토요일에 팽목항 세월호기억관 앞마당에서 오는 2020년 2월 1일 오후4시16분부터 ‘0416 기억예술마당 서른다섯번째’을 세월호현장교사실천단과 함께 예술인들이 모여 연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제대로 된 조사나 대책이 논의 되지 못하고 정권이나 정치인들에게 이용 당하다보면 제2의 세월호 참사는 일어날수 밖에 없으므로 우리는 세월호 희생자들과 같은 미래세대를 위해서라도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결코 잊지말아야 하기 때문에 기억예술마당을 멈출수가 없다.

 비행기와 열차사고가 나면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가 운영되어 그 사고에 대한 철저한 사고 원인 분석과 대책을 세워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하고 있으나 유독 여객선 사고에서는 사고에 대한 조사가 제대로 되지 않고 반면교사하지 못하고 있음을 인식하여야 한다.

이에 우리는 참사에 대해‘기억하기, 진실 밝히기, 되풀이 하지 않기’라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를 치유하고 공동체를 회복해 가야 할것으로 참사현장 기록물을 기록 할 수 있도록 반드시 팽목기억공간 건립이 중요합니다.

또, “지난4월16일 김영록 전남도지사는 진도실내체육관에서 열린 5주기 추모식에서’팽목기록관조성’을 약속했었다”며 “이후 전남도는 진도군에’기록관 건립을 위한 항만계획 변경 협조공문’을 보냈지만 ‘협조 할 수 없다’고” 하였으니 진도군이 올바로 전향 할 수 있도록 시민연대의 힘이 필요 합니다.

 팽목기억공간 조성을 위한 국민비상대책위원회는”팽목4·16기록관 조성 사업을 전남 진도군이 가로막고 있다”며 “오히려 세월호 참사의 기억을 지우려 하고 있다”고 하며, 진도군은 “진도항 공사에만 속도를 내고 있는 상황이다”며, 하지만 “팽목항에는 지금도 국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는 만큼 기억돼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매월 마지막주 토요일에 팽목항‘기억예술마당’은 지난 2015년 6월 27일 첫 공연을 한 이후, 5년간 미수습자‘기다림의 공연’ 23회와 세월호 인양후 잊지않기 위한‘기억예술마당’을 32회를 하고 있으며 비가오나 눈이오나 빠짐없이 전국예술인들이 모여 세월호 참사 추모 및 기억공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참고로 팽목항 기억공간 조성 참여단 모집 http://416.co.kr 팽목항 416공원 조성 요구 서명 http://416park.co.kr 세월호 유가족 방송 http://416tv.net 세월호 참사 관련 중요 사안이 있을때 마다 집중 할 수 있도록 http://2014416.comhttp://20140416.com 그 밖의 많은 416관련 도메인 서비스를 계속하고 있는 이유는 세월호 참사의 현장에 살고 있다는 주민으로 부채감 일 수 있겠지만 반면교사하여 세월호 참사와 같은 아픔이 더이상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안전한 대한민국에서 살고 싶기 때문입니다.

EBS1 엄마의 섬을 찾아 갑니다.

20160412007_EBS1_rulokdo

오는 4월 12일 화요일 밤11시35분 EBS1 [휴먼다큐, 그 사람] 본방송, 낮 12시10분(전주재방) < 시대 공감, 미스터리 휴먼다큐 그 사람> 목포에서 인테리어 시공 일을 하는 김양일(59)씨 그의 어머니는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눌옥도에 살고 있다.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에 있는 178개(유인도 35개, 무인도는 143개)로 섬들이 무수히 많다하여 조도(鳥島), 그중에서 섬의 형태가 술을 담그는 누룩처럼 생겼다고 해서 눌옥도라고 불린다는 이곳은 현재 네 가구밖에 살지 않는 조용한 섬이다.

진도에서 배를 두 번 갈아타야 할 정도로 교통이 불편하고 작은 구멍가게도 없어 생활하는데 제약이 많은 섬. 장남인 양일 씨는 섬에서 홀로 지내는 어머님이 늘 마음에 걸린다는데.. 남편을 묻어둔 섬을 차마 떠나지 못하는 양일 씨의 어머니는 과연 누구일까?

양일 씨의 어머니. 그 첫 번째 후보는 박상례(78)씨. 여덟 살에 부모님을 모두 여의고 난 뒤, 남의 집 식모살이를 하며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는 그녀. 열아홉 살에 결혼한 후, 다섯 아들을 낳았지만 남편이 일찍 사망하여 홀로 농사와 집안일을 병행해야 했다.

자식만큼은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라며, 없는 살림에도 불구하고 다섯 아들을 모두 공부시켰으나 과거 섬을 벗어나고 싶었던 적도 있지만, 이제는 육지에만 가면 섬이 눈앞에 아른거려 자꾸 돌아오게 된다는데..

다음은 두 번째 후보는 박대례(79)씨. 젊었을 때 눌옥도로 시집와서 8남매를 낳은 그녀 그러나 남편을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내고 자식들 3명도 가슴에 묻어야 했다.

슬퍼 할 겨를도 없이 남은 자식을 건사하기 위해 톳 양식을 하고, 섬 주변에 나는 미역과 파래를 채취하며 생계를 유지해오며, 이제는 자식들이 다 장성하여, 편한 도시에서 모시겠다는 권유에도 섬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는데..

연로한 어머니가 섬에 혼자 남아 계신 것이 안쓰러워 자식들이 함께 힘을 보태어 목포에 거처를 마련해 드렸지만, 며칠 도시에 계시다가도 섬이 그리워 다시 눌옥도로 돌아간다는 어머니. 과연 남편을 묻어둔 섬을 떠나지 못하는 어머니는 과연 누굴일까요? 엄마의 섬 눌옥도에서 사는 양일씨의 어머니는 과연 누구 일까요? 함께 찾아 봅니다.

다도해 유구한 역사를 말하다.

birdisland_map_2015_total2

우리나라 단일면으로도 가장 많은 178개(유35개,무143개)로 이루어져 흔히‘새떼’처럼 섬이 흩여진 곳이라 조도(鳥島)이며, 조선시대 행정구역이름은 여러섬이란 뜻의 제도면(諸島面)이었으나 1895년 비로소 지금의 행정구역 이름인 조도면(鳥島面)로 변경되었다.

조도면 섬에서는 석기시대를 말하는 화살촉, 돌도끼를 비롯한 고인돌과 고려때 지석묘들도 발견되었지만 왜적과 해적들로 인하여 공도(空島)시기가 있어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의 선조들이 섬에 들어온 시기는 임진왜란(1598년)이후 1600년초로 족보를 통해 확인된다.

조도사람들이 서양문물을 접했던 사건으로는 1714년 조도사람들 9명이 표류하다 17일만에 일본 오끼나와에 표착했다가 중국을 통해 귀국한 9명에 대한 심문기록이 숙종실록, 1758년 대만 표류, 1899년 일본 표류등 표착하여 조도사람들의 외국 문물을 접하고 활발한 어업 활동을 했음을 가늠 할 수 있을 정도다.

한편, 서양에서 조도문물을 접했던 사건으로는 1816년으로 200년전 영함(英艦)을 호위하던 호위함(리라호)의 바실홀(Basil Hal)함장의 왕실보고서에서 조선인들과 영국인들이 서로를 관찰한 것처럼 역사서가 후대에 전달되고 있는데 조도사람들의 생활상이 서양에는 조선의 모습으로 전달되고 있음을 알수 있다.

또한, 섬지역이지만 조도지역이 서양문물에 대한 거부감이 덜한 이유로는 1866년 천주교의 정착 동구리와 창리에 선교당으로 시작되었고, 1898년 목포산정동 초대 프랑스신부(도예)(1898~1909)가 판공성사 차 제주에 갔다 오다 풍랑으로 동구리 방문 이후 공소 개설함으로써 카톨릭 역사가 150년에 이른다.

최근 일어난 세월호 침몰사고 처럼 대형해난 사고가 끊이지 않는 지역으로 1968년 병풍도에 부디쳐 우리나라에서 기름 해양유출 첫 피해지역으로 국제항로(매물수도)와 국내항로(맹골수도)가 있어 수많은 선박의 통항로로 우리나라에서 조류가 빠른 해역이다.

지난 해난사고는 1947년 전복사고 7명사망, 1957년 채취선 14명 사망 나루선 15명 사망 전복사고, 1966년 6명 전복사고, 1973년 한성호 61명 사망 전복사고, 1978년 어선 3명 실종, 1980년 어선 3명 조난, 1988년 어선 1명 익사, 1990년 어선 4명 실종, 1996년 어선 3명 실종 등 해난사고 유난이 많이 일어난 지역이라고 할 수 있겠다.